한미사진미술관은 오는 2014년 8월 9일부터 9월 6일까지 김옥선의 근작 《The Shining Things》를 처음으로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김옥선 작가가 《No Direction Home》 이후 꾸준히 작업해오던 새로운 연작을 처음으로 공개하는 자리이며, 전시와 더불어 50여점의 작품이 실린 사진집도 함께 발간할 예정이다.
The Shining Things 거기 있음에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나무이다. 움직이지도 않고 항상 그 자리에 있어 지나쳐버릴 수도 있는 보통 나무인데 사진 속 나무는 바람에 기울어진 형태와 사시사철 푸른 잎이 어색하고 화면의 중앙에 자리 잡은 굵은 가지와 그것을 감싸는 마른 가지들이 혼란스러운 듯 어우러져 있어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된다.
김옥선은 드라마틱한 요소들로 새로운 상황을 만든 아름다운 사진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사진가이다. 한국 사회에 오랫동안 자리 잡아온 가족의 개념과 다른 국제결혼 커플, 동성애 커플을《Happy Together》로 보여주었다.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화면 속 정면을 바라보는 시선은 대립적이어서 낯설다. 독일인과 결혼하여 19년 동안 제주도에서 살아가며 자신의 모습과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삶의 형태를 《함일의 배》와 《No Direction Home》으로 풀어 놓았다. 망망대해에 꿈을 담고 나아가는 배를 만들며 잃어버린 꿈을 찾아가는 사람들, 정착하고 싶은 것과 떠도는 것의 경계를 드러내며 자신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조금씩 사진으로 표현했다. 자연스럽게 자신에서 타인으로 시선을 돌리며 삶도 사진도 확장되어 갔다. 인물을 넘어서 자연이 자연스럽게 들어오고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있다. 정착할 곳을 찾는 듯한 『함일의 배』
(2008) 표지의 주인공은 자연을 응시하고, 지금 김옥선은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간 숲 속에 깊이 뿌리내린 나무를 바라본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오랫동안 기억해주길 희망하고 자신의 존재를 남기고자 꾸준히 노력한다. 사진이 대중화되면서 초상화는 초상사진으로 대체되고 자연스러운 포즈와 살아있는 눈을 강조하는 정면 초상은 인물의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방법이 되었다. 《The Shining Things》에서 김옥선이 나무를 보는 방법은 정면성을 기반으로 하는 인물화의 방식이다. 사진의 나무는 사람처럼 저마다 얼굴 표정, 자세 등 개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나무는 비스듬히 누워있고, 어떤 나무는 가지가 너무 많기도 하고 또, 어떤 나무는 주변에 휩싸여 전체를 볼 수 없고 어떤 나무는 제주의 삶 속에 파고들어 있는 그냥 종려나무이다.
제주는 독특한 지형과 기후를 가진 땅이다. 뭍과는 다르게 해안가의 따뜻한 공기와 고도에 따라 수종이 다른 푸른 나무가 사시사철 가득한 곳이다. 제주의 나무는 척박한 땅과 바위 틈, 강한 바람 속에서도 굳건히 뿌리내리고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여 스스로 자라난다. 김옥선은 제주에 뿌리내린 나무를 있는 그대로 본다.
오랜 시간 관찰을 통해 대상을 선별하고 4×5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나무를 바라보는 사진가는 자신의 주관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숨을 고르고 자연스럽게 나무를 드러낼 수 있는 시간을기다린다. 나무는 각각이 처한 환경 속에서 미동하지 않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봐주는 작가에게 절묘한 타이밍을 제공한다. 작가와 대상과의 일정한 거리는 좁게는 카메라를 사이에 둔 사진가와의 관계이고 넓게는 사진을 바라볼 익명의 누군가와 관계를 만들려고 준비한다. 그리고 시인 김춘수의 시에서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된다’는 것처럼 한 그루의 나무가 단순한 사진가의 대상을 넘어 관람객에게 인식이 될 때 비로소 뿌리를 내리고 순응하는 존재의 본질이 빛을 발하게 된다. 김옥선은 나무의 정면에서 대상의 유사한 형태, 색, 모양 등을 반복하고 정면사진의 형식으로 각각 존재의 차이점을 보여준다. 그 안에서 개별적인 나무의 존재를 재인식하여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대상이 아니라 주변에 존재하는 대상으로써 일상을 보여준다.
눈에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여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보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지금 가리어져 드러나지 않을 뿐 없는 것은 아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을 지라도 존재의 아름다움은 언젠가 드러난다. 이전의 김옥선의 사진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무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항상 그 자리에서 묵묵히 자리 지킨다. 숲 속에서 유독 빛이 나는 나무 한 그루는 제주도의 거친 지형에 깊게 뿌리내린 특별한 존재로서 거기에 있음에 빛이 나고, 거기 있음으로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