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The Track》

2003.04.26. 토 ~ 2003.06.07. 토

기억과 망각, 시간과 공간을 담는 픽셀

‘카메라-눈’이라는 개념 속에서 라즐로 모홀리-나기는 이제는 또 하나의 자연이 된 기계적인 눈을 말한 바 있다. 카메라의 렌즈가 또 다른 눈이 되고, 우리는 그 기계적인 눈으로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고 인식한다. 세계를 바라보는 주체로서 카메라를 두는 일은 그만큼 적극적으로 기계적인 방식을 예술적 과제로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런 개념은 비슷한 시기, 소비에트 실험영화인 찌가 베르토프(Dziga Vertov)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에서도 발견된다. 삼발이로 받쳐진 카메라는 마치 다리가 달린 양 스스로 걸어가 도시를 이미지로 담아낸다. 카메라를 단순한 도구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독자적인 시각을 갖는 ‘눈’으로 이해하는 일은 분명 진보적인 관점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사진의 위대함은, 그리고 영화의 위대함은 현실을 손쉽게 복제할 수 있는 기술에 있기보다는, 현실의 무심한 흐름을 정지시키고 현실의 단편들을 모아냄으로써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일과 이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는 일 자체를 훨씬 의식적으로 만드는 데 있기 때문이다.

비디오 카메라로 거리에서 마주친 이름 모를 사람들을 찍은 후, 그들의 얼굴만을 마치 하나의 정보단위처럼 프레임 별로 모아 또 다른 가공을 해내는 김창수의 작업 역시 카메라의 눈으로 비친 환경을 의식화하려는 의도를 갖는다. 그의 카메라에 무심하게 찍힌 얼굴들은 각각의 이름으로 남지 않는다. 얼굴들은 컴퓨터에서 무한히 축소되고, 반대로 확대되면서 무작위적으로 배치될 뿐이다. 그런데 무수한 얼굴들이 모여 또 하나의 얼굴을 만들고, 하늘을 만들며, 골목을 만들고, 풍경을 만든다.

하지만 여전히 분명한 이름은 없다. 오히려 무의식 저 아래에 남아있을 기억의 잔재들이 만든 그림자처럼 아른거리는 형상으로 남아있다. 혹은 흙 사이로 깊게 파인 수레바퀴 자국처럼, 어떤 막연한 구름 형상처럼, 망각의 늪을 헤매는 유령처럼, 꿈에서 본 듯한 모호하고도 기이한 빛처럼, 신화 속의 낯설고 머나먼 나라에서 돌아온 선지자의 분위기처럼 불분명하고 때로는 신비롭다. 결국 디지털 작업을 거치면서 카메라에 찍힌 현실은 무의식을 흐르는 기억과 망각의 환경을 전혀 다르게 만들어내는 셈이다.

하지만 김창수의 작업은 정확히 사진이라 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사진과 영화에서의 몽타주 작업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몽타주 이론 자체도 1920년대 아방가르드 예술의 시기에 나온 것이니, 사실 이론적 틀과 개념이 같을 뿐이지 기술 자체가 같은 것은 결코 아니다. 여러 사진 자료들을 모아 일일이 가위로 잘라 짜맞추던 아날로그적 방식의 힘겨운 수공작업은 이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단지 사진과 영화의 이미지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현실의 전체가 아니라 부분이자 파편이라는 점을 새삼스럽지만 인식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서 20세기 예술가들은 영화의 쇼트들 혹은 조각들의 적당한 순서와 그것들의 조합에 필요한 리듬을 발견하는 것을 영화감독이 가져야 할 기술의 주요한 과제로 삼은 것이다. 몽타주란, 따라서 이를 실현하는 구성적인 편집이며, 연결과 병치, 반전과 중첩, 조립과 재구성 등의 기법을 통해 현실에 대한 새로운 서사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런 원리가 이미 디지털 방식을 많이 닮아있다.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김창수는 그 많은 이미지를 마치 씨줄과 날줄을 병합하듯 구성해 간다. 작은 단위의 얼굴 사진들은 디지털 이미지를 구성할 때 필요한 기본단위인 픽셀과도 같은 기능을 한다. 마치 신인상파에서 무수한 색채 점들이 전체 이미지를 구성하는 단위가 되듯이, 혹은 싸구려 인쇄술의 망점들이 전체 형상을 만들어내는 요소가 되듯, 김창수의 카메라에 찍힌 수많은 얼굴들은 픽셀과 같은 위치로 전환된다. 하지만 픽셀의 각각에는 작가의 기억과 망각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형태이다. 김창수의 픽셀은 순수한 파편이 아니라 이미 그를 스쳐지나간 시간과 공간의 단위들이기 때문이다. 그 시간과 공간의 단위들이 다시 새로운 이미지로 변신하면서 또 새로운 기억과 망각의 구조를 만들어낸다. 어쩌면 그 변신은 끝없이 전개될 것만 같다. 마치 우리들 삶에서 쉼 없이 지나치는 시간과 공간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박신의)


장소

뮤지엄한미 방이

참여작가

김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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