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호 《Silent Boundaries》

2018.08.25. 토 ~ 2018.10.20. 토

《Silent Boundaries》 연작은 박기호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4년 동안 철거를 앞둔 재개발 지역을 촬영한 시리즈이다. 작업은 서울 돈의문에서 시작해 미아동, 북아현동을 거쳐 길음동에서 끝이 난다. ‘고요한 경계’란 제목은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재개발 지역으로 묶여 구분이 되어 버린 이 지역들의 물리적 ‘경계’를 의미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어느새 철거민들의 삶에 드리워진 시간의 ‘경계’를 의미할 수도 있다.

사실 대도시 재개발 지역이란 소재는 예술사진 안에서 수십 년간 무수히 반복되고 변주된 주제이다. 그런 주제를 괘념치 않고 선택한 박기호에게는 변별력 있는 작가시선과 아버지(서양화가 고 박고석)가 직접 지은 집에서 자란 어린 시절 기억에서 비롯된 대상을 바라보는 그만의 감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시선은 재개발이라는 사건 자체보다 재개발이 남긴 흔적들에 꽂혀있다. 빈집에 남은 구조와 물건들은 은유와 상징의 방식으로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한편, 그 자체로 세련된 형식미를 지녀 특별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주와 철거라는 사회적 맥락을 적극적으로 사진에 담지 않고 순수한 이미지가 제공하는 즐거움을 주는 것이 박기호의 재개발 사진이 갖는 개성이다. 그런 이미지를 코팅된 잉크젯 인화지 대신 한지에 프린트하는데, 한지에 잉크가 은은히 스며들어 만들어낸 소박한 색감의 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작가의 어릴 적 기억과 중첩되는 철거 현장을 향한 작가의 감성, 다시 말해 그리움과 정겨움을 구체화시켜주는 메타포이다. 한지를 주 표현 매체로 삼아 작업하는 사진가들이 여럿 있지만, 박기호만큼 한지의 특성과 작업의 소재, 작가가 구현시키고자 하는 내적인 심상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그의 사진은 ‘사라진’ 과거의 흔적이지만, 그가 발견한 삶의 흔적들, 즉 피사체와 맺었던 경험 속에 ‘남아있는’ 기억과 추억의 자국이기도 하다. 관람객들은 이 기억의 숲을 거닐며 우리의 ‘사라진’ 과거, 하지만 우리의 의식과 감각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그때/그곳을 곱씹고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번 전시를 기념해 사진집이 함께 발간될 예정이며, 대상별 흥미로운 전시연계프로그램 또한 준비되어 있다.


Venue

뮤지엄한미 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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