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운구 《네모 그림자》

2017.09.16. 토 ~ 2017.11.25. 토

둔탁한 손 그리고 그 사내의 손에 끼워진 짧은 담배,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눈 속을 아이와 걸어가는 아낙네, 지나간 인생을 이렇고 저렇고 이야기할 수 없지만 저마다의 사진에는 다 말하지 않은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대의 삶 속에서 한국 사진의 정체성을 찾던 사진가 강운구가 2008년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전시한 《저녁에》 이후 9년만에 《네모 그림자》로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 사진들을 강운구는 그냥 주워 담은 사진들이라고 한다.

고집스러우리만치 사진에 대한 생각을 지켜온, 날카로운 시선으로 자신의 소신만을 담아온 강운구의 이번 사진전 《네모 그림자》는 이 땅뿐 아니라 온 세상의 네모와 그림자를 흑백, 컬러, 아날로그, 그리고 디지털 사진들로 보여준다. 다양한 형식과 색으로 오래도록 모아왔던 사진들은 같은 자리에 있는 듯 변화하는 그림자처럼 세월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사진가의 반듯한 네모 화면 속에 차곡차곡 담겨 있다.

빛과 그림자는 사진의 본질이다. 화려한 빛 속에 숨겨져 드러나지 않는 그림자는 그동안 우리가 간과해온 진실이기도 하다. 필연적으로, 내 그림자는 나와 동행한다. 그림자는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고 돌아보고 멈춘 그 순간에만 사진에 담을 수 있다. 그 순간을 만나기 위해 사진가는 한발치 뒤에서 산책자처럼 차근차근 빛을 관찰한다. 그리고 선택된 찰나 그림자는 한쪽 구석에 수줍게 때로는 화면 가득히 길게 늘어서 언제나처럼 실재의 일부가 된다. 허상으로서의 그림자가 아닌 당당한 존재이며 그가 바라본 세상이며 자신이 살아온 풍경이다. 그의 시선은 이 땅의 본질을 발견하려던 패기 넘친 그때, 다시 말하면, 이 땅을 일궈낸 깊은 주름의 손과 땀을 찾아 걷고 또 걷던 그때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낯선 세계와 부딪히고 자신과 대면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바닥에 깔린 그림자는 모두 같아 보이지만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오늘의 그림자는 어제 혹은 내일의 그것이 아니다. 마치 사진이 현재라고 느끼지만 셔터를 누르는 순간 과거가 되는 것처럼 우리는 매일 새로운 날을 맞이하고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인생의 저녁을 지나는 강운구는 여전히 과장되거나 목가적인 아름다운 풍경을 담지 않는다. 다만,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세상을 사진으로 남긴다. 언제나처럼 조금씩 발걸음을 옮겨 변화한 세상을 수집하고 서정적 분위기의 풍경을 담지만 간결한 제목으로 그자리에 있음, 현존 그대로를 강조한다. 사각의 네모 속에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구성된 화면은 사진가의 눈, 생각, 그리고 삶이 여전히 변함없음을 증명한다. 그것은 저녁을 지나 그림자의 숨겨진 어두움까지 볼 줄 아는 사진가의 힘이다.

어떤 이에게 인생의 저녁은 어두움이지만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여명의 시기는 달라진다. 비록 우리는 강운구의 거친 화면과 그 속에 머물고 있는 이 땅의 사람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오히려 밝음 속에 감추어진 그림자의 본질을 보는 사진가의 삶을 보게 되었다. 이제 저녁이 지나고 내려가는 강운구의 사진인생은 아직 남은 여명을 기다린다.

이번 강운구 사진전 《네모 그림자》는 한미사진미술관에서 11월 25일까지 전시하며, 사진전과 더불어 140여 점의 사진이 수록된 사진집이 발간된다.


Venue

뮤지엄한미 방이

참여작가

강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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