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는 궁핍하지 않았다
올해로 88세를 맞이하는 광고사진가 김한용은 1960년대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상품들의 이미지를 사진으로 각인시켜왔다. 그의 사진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역사적 교훈을 가르쳐 준다. 그것은 1960년대가 결코 궁핍한 시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가 1960년대에 찍은 원색의 광고사진들은 풍요로운 색채, 오늘날의 연예인이나 모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미묘한 표정으로 가득 차 있어서, 결코 빈곤함이라고는 느낄 수 없다. 김지미, 최무룡, 신성일, 엄앵란, 최은희, 홍세미, 고은아, 윤정희, 문희, 남정임, 정윤희 등 그의 카메라 앞에 섰던 당시 톱스타들은 1960년대가 아름답고 풍요로웠던 시대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메신저 같은 존재들이다.
김한용의 사진은 1960년대에 대해 우리에게 또 다른 중요한 지점을 열어주고 있으니, 그것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소비자라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이 역사의 지평에 떠오른 때이다. 소비자는 경제적인 논리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감각으로도 나타났는데, 김한용의 사진은 그런 감각을 가장 생생하게 구현하고 있다. 한국의 소비자는 풍부한 감각 속에서 태어났다. 우리가 막연히 상상하듯이 궁핍하고 척박한 땅에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김한용의 사진 속에 되돌아온 1960년대의 사물들은 결코 조잡하거나 촌스럽지 않다. 문명이란 한번 나타났다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꼴을 바꿔가면서 되돌아오는 반복의 사이클 속에 살고 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김한용의 사진을 통해 사물들이 되살아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소비자의 탄생
이번 전시는 김한용의 사진을 ‘소비자의 탄생’이라는 주제를 통해 새롭게 조명해 보려는 기회이다. 우리는 어떤 종교를 믿건, 어떤 사상을 믿건 기본적으로 소비자이다. 소비는 우리들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실존의 양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들은 자신이 소비자라는 사실을 벗어날 수 없다. 그 소비의 핵심에 감각이 놓여 있다. 그리고 우리의 감각적 스승은 김한용이다. 그의 사진들은 우리로 하여금 별 걱정이나 고민 없이 코카콜라와 오비맥주, 쥬단학 화장품과 낙타표 혼방모사를 택하도록 이끌었다. 학계에서 소비자가 언제 어떤 계기로 역사의 지평에 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연구가 없으므로 우리는 김한용의 사진을 통해 소비자가 탄생하게 된 시대적 정황을 미뤄 짐작해 볼 수 있다.
광고사진과 그 소비자들
전시는 크게 보면 두 부분으로 돼 있다. 김한용이 찍은 원색의 광고사진과 흑백의 소비자 사진이 그것이다.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어떤 감각적 세계 속에서 소비자들이 등장했는지 유추하게 해보자는 것이 그 취지이다. 오비맥주, 코카콜라, 해태제과, 쥬단학화장품 등 우리의 소비시대를 열었던 상품들의 광고사진과, 그런 것들을 소비하면서 새로운 감각의 세계에 눈을 떴을 소비자들의 모습이 흑백으로 전시되면서 대비된다.
세부적으로는 전시는 <고전미인도>, <비현실>, <에로틱>, <소비생활의 발견>, <소비자의 초상>의 다섯 부분으로 돼 있다. 각 부분들은 관람객이 사진들을 볼 때 나눠서 볼 수 있는 편의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김한용의 사진이 표상하고 있는 것을 분명하게 해준다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고전미인도>는 모델들의 표정이나 색채가 오늘날에는 절대로 재연해 낼 수 없는 고전적인 경지에 이른 사진들이다. <비현실>은 승마를 즐긴다거나 골프를 치는 등, 당시로서는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세계를 표상한 사진들로서, 1960년대의 상품이미지가 어떤 꿈을 대중에게 심어주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에로틱>은 모델들의 에로틱한 면이 강조된 사진으로서, 광고의 매력이 어디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소비생활의 발견>은 훼미리 아이스크림이나 코카콜라 같은 본격적인 소비품을 우리 생활 속으로 끌어들인 상품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소비자의 초상>은 김한용이 찍은 흑백 다큐멘터리 사진 중에서 소비자의 모습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른 것이다. 이 사진 속에 나오는 잘 사는 사람, 못 사는 사람, 도시사람, 시골사람, 남녀노소들이 먹고 마시고 구경하고 즐기는 모습들을 통해 김한용의 사진들을 통해 소비자로 태어났을 그 모습을 상상하도록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