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에 귀 기울인다. 사진가 주명덕 역시 괴팍스럽게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통념상 말하는 아름다움, 기쁨, 그리고 슬픔도 그에게 감동을 주지 않는다면 사진에 담지 않는다. 그의 가슴을 움직이는 순간만을 사진에 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상을 바라본다. 그렇게 『섞여진 이름들』 속 아이들의 눈망울을 프레임에 담았고, 한국의 구석구석을 그만의 함축적인 언어로 담았다.
또한 주명덕은 어디서나 자신만 볼 수 있는 빛을 찾는다. 똑같은 세상에 같은 시간을 나누어 사는 일상 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은 숨겨진 것, 그리고 남들이 보지 않는 빛을 바라본다. 1980년대 말 그가 보여준 빽빽한 나무와 얼기설기 얽힌 넝쿨에 담긴 한줄기 빛은 어두웠지만 아름다웠다. 사진을 평생의 업으로 삼으면서 조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준 검은빛의 풍경 《Lost Landscapes》는 굵은 선으로 움직이는 땅의 힘, 생동하는 그 기운이 먹먹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그렇게 그는 사진 속에 그가 밟고 살아온 땅을 담아내려고 노력하였다.
이번에는 연(蓮)을 사진에 담았다. 연은 탄생과 생명을 지닌 신성한 식물이자 문명의 뿌리로서 다양한 상징과 의미로 읽힌다. 주명덕은 오래전부터 찍고 쉬고, 다시 보기를 반복하였다. 통념을 넘고 스스로 새로워지려는 노력일 것이다. 그사이 계절은 바뀌고, 어느덧 꽃이 피고 지며 시간이 흘렀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생로병사를 경험하고 순간순간 스스로를 다져갔다. 연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지만,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가면서 그에게 연은 또 다른 한국의 풍경이 되었다. 연은 심연(深淵)에 뿌리내리고 피는 꽃이다. 깊은 흙 속에 뿌리내리고 물 위에 넓은 잎을 피우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며 수면으로 지고 결국은 다시 물로 돌아가 그 자리에 씨를 품는다. 자연의 순리대로 물속에서 이루어지는 생로병사를 담은 주명덕의 연은 화려한 꽃의 형태, 대상이 갖는 아름다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연을 둘러싼 물의 기운에 주목하기에 풍경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물은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의 모습과도 같다. 모든 더러운 것을 포용하고 정화하여 꽃을 피게 하고 그 열매를 키워내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것이다. 연의 꽃과 뿌리를 변함없이 지켜주는 심연의 강인함은 땅이 보여주는 생기처럼 힘찬 기운은 아니지만 드러내지 않는 조용함에 있다. 그리고 폭포처럼 격정적이지 않고 바다처럼 무관심하지 않으면서 연을 지키면서 만개한 꽃이 갖는 화려함도 섞이지 않는 고고함, 그리고 죽어가는 슬픔까지도 포용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가는 만개한 연꽃의 아름다움을 배제하고 여느 때와 같이 자신의 직관을 믿고 그만의 빛을 읽고 그가 보여주고 싶은 방식으로 연을 바라본다. 꽃이 피고 시들어 죽어가는 슬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시간, 연을 지탱하고 포용하는 물의 모습, 그리고 군집하는 잎의 얽힌 모습을 그의 간결한 화면에 담는다.
연은 물 한 방울도 꽃잎 속에 스며들지 않고 연 잎의 주변을 맴돌아 다시 수면으로 돌려보낸다. 잎은 본능적으로 해를 향해 뻗어가고, 여름의 생동감이 떨어지면 꽃은 지고 부스러져 황량하게 죽어간다. 그러나 꽃과 함께 수면 위를 비추는 빛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안도감과 편안함을 준다. 이른 아침 화려한 꽃으로 잠시 피어 스스로 자태를 추스르면서 겨울을 맞고 결국 태어난 물속으로 다시 돌아간다. 사진가 주명덕이 바라보는 연은 그가 여전히 애정을 갖고 있는 한국 풍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이번 연작은 《Lost Landscapes》처럼 여전히 어둡게 보이지만 세월이 지나면 모든 것이 소멸하는 스러지는 것의 아름다움을 직시하는 사진가의 노련함을 고스란히 담아 보여준다. 스스로 생명을 품은 자연이면서 더 큰 자연으로써 물의 일부가 되는 연, 세월에 스러져 이윽고 자연으로 환원되는 평안함은 누구나 보는 상식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새로운 창조를 바라보는 이유가 된다. 반짝이는 수면 위에서 연을 비추는 밝은 빛은 세월을 안고 스러져가는 것의 덧없음 그러나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어온 이 땅에 대한 애련이며 주명덕의 연을 바라보게 하는 힘이다. 이제 그는 한국문화의 근간이자 모든 문명의 뿌리로서 연을 다룸으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큰 한걸음을 내딛는다. 마치 한곳에 뿌리박고 있지만 넓은 물 속에서 번식하며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가는 연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