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다 마유미 《피안의 세계: Living Absence》

2012.03.31. 토 ~ 2012.06.09. 토

한미사진미술관은 2012년도 첫 번째 해외작가전시로 일본작가 테라다 마유미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테라다 마유미는 디지털 사진에 대한 열기가 한창인 현시대에 흑백 은염사진을 통해 사진의 고유한 본질적 특성을 차근히 보여주는 작가이다. 조각을 전공한 뒤 그 모티브와 방법론적인 실험들을 사진으로 확장시킨 이색적인 배경을 가진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가이다.

그는 카드보드와 스티로폼, 석고 등으로 미니어처를 제작한 뒤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빛과 그로 인해 생기는 그림자와 사물형태의 변화를 흑백사진으로 촬영했다. 결과물은 한 장의 사진으로, 혹은 여러 장의 연속사진으로 구성된다. 미니어처를 만드는 작업에서부터 시간을 두고 미니어처에 비추는 빛의 움직임을 관망하고 한 순간을 포착하는 작업에 이르기까지. 마유미의 흑백사진은 결코 순간의 찰나를 담은 사진이라기 보다는 ‘더디고 더딘 순간의 포착’이라는 묘사가 더 잘 어울린다.

사진이 아닌 다른 예술적 이력을 가지고도 사진의 정수라 할 수 있는 흑백 은염사진 작업을 하는 마유미는 그 영향 때문인지 사진=빛의 그림이라는 공식을 매우 철저하게 고수한다. 딥틱, 폴립틱으로 구성된 그의 작업들은 같은 장면, 동일한 시점에서 촬영되었지만 명암의 차이, 빛과 그림자의 변화, 대기의 변모 등을 담아내어 관람자의 시선을 무엇보다도 이라는 대상에 고정시킨다. 더불어 그의 작업은 존 시스템의 완벽한 샘플작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매우 풍부한 흑백 계조를 담고 있다.

테이블 위에 정갈하게 놓인 사기그릇, 그 입을 포근하게 감싸 안은 빛의 향연. 서정적이며 섬세한 아름다움을 지닌 마유미의 작업 속에는 작가 내면에 갇혀있던 멜랑콜리, 고독과 절망, 허무와 같은 어두운 측면과 이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욕망과 의지의 발현 등 새로운 에너지가 공존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되는 빛의 움직임, 그로 인한 그림자와 사물의 새로운 변모는 이러한 물리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작업을 이어오며 변화되어 온 작가 내면의 모습이기도 하다. 마유미의 흑백사진은 이렇듯, 오브제의 연출과 순간의 빛의 포착을 통해 작가 내면의 시학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이번 전시는 마유미의 2010~2011년도 신작을 포함하여, 2001년에 사진을 시작한 이후 발표한 일련의 작업시리즈들을 소개한다. 지금까지 주로 작품들이 제작연대순 또는 시리즈별로 분류되어 소개되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구성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작품을 통해 드러난 작가의 심상변화, 작업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하나의 흐름으로 시각화시키고자 했다. ‘멜랑콜리하고 다소 음울한 자폐적 공간에 갇혀있던 작가가 외부세계를 향해 창을 내어 이러한 폐색된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걸음마를 배우려는 의지를 가지고 마지막으로 광활한 자연 속의 무한의 공간으로 나오기까지. 이번 테라다 마유미 전시는 국내 관람객들에게도, 작가에게도 새로운 시선을 제공할 것이다.


장소

뮤지엄한미 방이

참여작가

테라다 마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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