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명심의 〈예술가의 초상〉은 1967년에 시작되었다. 연세대 은사인 박두진의 시집 『하얀 날개』의 출간을 계기로 시인을 찍은 사진가는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문인들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서정주를 필두로 박목월, 박경리는 물론이고 동년배인 고은, 그리고 연하인 정현종, 강은교에 이르기까지 사진가는 한국 문단계를 풍미한 작가들의 꾸밈 없는 얼굴, 일상의 제스처를 검박한 사진언어로 기록했다. 어느덧 그의 렌즈는 문인들을 넘어서 한국 예술계의 기린아들로 향하고 있었다. 한국의 서양화를 개척한 오지호, 장욱진, 한국화의 거목 김기창을 위시하여 그의 동향 친구인 조각가 최종태, 기벽으로 널리 알려진 중광, 그리고 국악인 황병기, 영화감독 김기영을 망라했다.
<예술가의 초상>은 무엇보다도 기교 없는 초상, 가식 없는 초상으로 정의될 수 있다. 육명심은 일반 대중이 품는 예술가에 대한 환상을 반복하거나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비근한 일상을, 그들의 평범한 표정을 진솔하게 카메라에 담았기 때문이다. 사진가가 포착한 작가들의 얼굴은 순수예술에 헌신하는 성자, 현실 저 너머의 이상만을 바라보는 몽상가라기 보다는, 조야한 현실에 고뇌하며 땀내나는 삶을 사는 생활인의 표정, 일상인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육명심의 카메라는 예술가의 삶은 이상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숨김 없는 얼굴, 평범한 일상을 통해 그들의 위대한 예술을 우리 삶 곁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고뇌, 갈등, 꿈으로 인식시킨다.
육명심의 <예술가의 초상>은 지난 한국 사회의 척박한 문화 환경 속에서도, 우리의 예술을 고통스런 애정으로 가꾸고 일군 저 초상의 이름들에게 바치는 존경과 우정의 사진 메시지이다. 그들과 40년 동안 나눈 사진가의 예술적 교감이며 그들에게 보낸 예술적 격려의 집합체이다. <예술가의 초상>은 한국 현대 예술의 뿌리는 아닐지라도, 그 든든한 둥치를 그 시절의 시집, 도록의 표지처럼 보여준다. 그 예술가들의 얼굴과 표정, 제스처를 통해 그들이 각고 끝에 지어낸 예술을 생생하게 전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