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명심의 백민>전은 <3인의 교수전>의 세 번째 전시이자 마지막 전시이다. 홍순태, 한정식 두 작가보다 조금 늦은 1965년에 사진을 시작한 육명심은 1969년 ‘인상’시리즈를 시작으로 하여 70년대에는 예술가의 초상을 선보였으며, 이후에는 작가 특유의 한국적인 토착정신과 생명력이 살아 숨쉬는 ‘백민’ 시리즈와 ‘장승’ 시리즈를 내놓았다. 작가는 자칫 소재주의로 흐를 수도 있던 당시 리얼리즘 기록사진의 한계를 뛰어넘어 끈질긴 생명력과 한국의 혼을 불어넣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업에서는 영적인 신비로움이 느껴진다.
백민(白民)은 ‘아무 벼슬이 없는 백성’을 말한다. 현대의 ‘서민’ 혹은 ‘민중’이라고 할 수 있는 ‘백민’은 고전적이고 민족적인 상징성을 포괄적으로 띠고 있는 단어이다. 작가의 사진 속, 백민의 모습에서는 일상의 고단함도 현대사회의 소외감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우리네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따뜻한 삶의 모습으로 채우고 있다. 한편, 우리네 전통 민화 속에서 걸어 나와 앉은 듯한 스님의 소탈한 모습을 찍은 <해인사, 1981>와 같은 사진 속에는 그 동안 작가가 찾고 구도하던 소박한 열매들로 수북하게 채워져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육명심 선생의 작품 중 백미라 할 수 있는 작품 <강릉, 1983>이다. 바로 한 치 앞에서 대면하고 있는 듯한 무당의 눈빛은 발산하는 신기(神氣)로 인해, 소름이 돋을 정도 이다.
작가가 몸담았던 70년대는 예술계의 전반에 걸쳐 민중에 대한 성찰과 논의가 이루어졌던 시대이다. 당시 예술인들의 초상 시리즈를 만들면서 그들과 교류하던 작가는 동시대를 살아가며 고민하던 또 한 명의 예술인으로써, 이번 작품을 통하여 문화적으로 진정한 우리의 것과 한국적 사진미학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의지를 담아내고 있다. 육명심의 이번 전시는 서구화된 모습 속에서 잊혀진 것 같지만 우리 속에 꿈틀대며 끈끈하게 묻어나는 조상들의 정서와 생명력을 흠뻑 느끼게 해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