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사진미술관(관장 송영숙)은 신진작가 지원의 일환으로 네덜란드 출신 스칼렛 호프트 그라플랜드(Scarlett Hooft Graafland, 1973~ )의 개인전을 2014년도 첫 전시로 개최한다. 이미 국제 무대에서 설치, 조각, 사진 장르의 영리한 조합과 풍경에 대한 독창적인 접근으로 주목받고 있는 스칼렛은 이번 전시가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전시다.
41점의 사진작품으로 그녀가 2004년부터 세계 각국의 오지(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 중국 광시와 푸젠 지역, 캐나다 누나부트 준주, 노르웨이 요툰헤이멘산지, 인도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마다가스카르에 이르는)를 여행하며 진행해온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네덜란드 북부지역 마른Maarn 출신인 그녀가 세계 각국의 오지를 찾아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지 중에서도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장소들만 찾아 다니는 스칼렛은 천상 ‘생활여행자’이다. 여행자 중에서도 여행의 불편과 고달픔을 감내해야 하는 오지여행자. “접근이 어려운 외딴 지역만이 가진 순수함이 매력적이다.”라고 고백하는 그녀에게 자연 그대로의 수려한 풍광과 그 안에 자연이 품은 청명한 공기, 햇빛에 반사된 고유한 색채는 작업의 생명과도 같다. 마다가스 카르의 찌는 듯한 여름 더위와 고산지대의 강한 바람에 살을 에는 매서운 추위, 끝도 없이 펼쳐진 볼리비아 소금 사막에 반사되어 눈을 멀게 할 듯 강렬한 태양빛은 모두 그녀가 몸으로 감내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환경적 요소인 한편, 훌륭한 작업 재료들이 되어준다. 계획한 작업을 실행에 옮기기 전, 작가는 촬영 장소의 지형적 특성을 이해하고 그에 적응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스칼렛은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Royal Academy of Art(1995~1999년)와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The Bezalel Academy of Arts and Design(1999~2000년), 그리고 뉴욕의 Parsons School of Design(2000~2002년)을 거치며 순수조각을 공부하였다. 사진을 단지 작업의 결과물을 기록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다 2004년 작가는 본격적으로 오지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사진을 작업 그 자체로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2004년 아이슬란드 항구도시인 레이캬비크에서 작업한 《Roof》시리즈들(사진1)은 그런 의미에서 스칼렛의 작업인생의 큰 전환점이며 그녀의 사진작업의 시작점이 되어준다. 스칼렛의 사진 속에는 자연을 배경으로 연출된 인물 또는 설치물이 등장한다. 거대한 자연의 속살을 관찰하고 그곳에서 비롯된 자신만의 감성과 의식을 시각화하는 작업이다.
그녀의 사진에서 인위적으로 연출된 흔적들은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자연에 귀속되거나 사라질 것들이다. 이는 1960년대 대지미술가들의 자연에 대한 친화적인 태도와도 맞닿아있다. 작업을 위한 사전 준비과정 또한 결코 순탄치 않다. 사진에 등장할 토착민 모델을 찾기 위해 토착민들이 가진 이방인에 대한 적대감과 문화적 이질감을 몸으로 부딪혀 마침내 얻는 소통이 전제되어야 하며, 장소에 적합한 재료를 찾아 설치물을 완성시킨다 하더라도 촬영 당일 바람세기, 빛의 양, 구름의 움직임 등은 결국 자연의 의지에 맡겨야 한다. 게다가 중형필름카메라를 사용하는 그녀에겐 디지털사진과 같이 이후에 보정작업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촬영시점에 최대한 완벽한 장면이 연출되어야 한다. 스칼렛은 이처럼 한 장의 이상적인 사진을 위해 오랜 시간을 투자하며 조정하고 개입하는 과정을 “그것이 내가 사진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이유다”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결정적 순간의 포착’이라기 보단 최적의 한 장면을 ‘계획하고 생산’하는 일에 가깝다. 하지만 ‘계획’과 ‘생산’의 사이엔 언제나 주어진 현실의 환경과 한계를 이해하고 해결을 모색하는 과정이 전제한다. 굳이 사진이 아니라면 이러한 모색과정은 불필요하다.
현실을 재료로 만든 스칼렛의 비현실적인 풍경은 ‘뜻밖의 사진Unlikely Photograph’이며, 이내 사라질, ‘현실 같지 않은 실재하는 풍경Unlikely Landscape’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작업은 개입Intervention의 연속이다. 현실을 포착하는 사진의 본성을 다소 비틀어 그 과정 안에 개입하고, 자연을 배경으로 인위적인 연출을 가해 뜻밖의 개입의 흔적을 남기며, 작업을 실현시키기 위해 촬영 장소와 그 안의 토착민들과의 소통의 개입을 추진한다.
스칼렛은 2005년부터 몇 차례에 걸쳐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을 여행하며 토착민들의 생활을 체험했다. 아름답게만 보이는 우유니 사막 안의 실상은 매우 험난하고 거칠었다. 자연의
규칙과 남성중심적인 전통에 순응하며 삶을 꾸리는 여성들을 목격한 후 스칼렛은 그들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그 작품이 바로 《Bolivia》시리즈의 대표작인 〈Out of Continuum〉이다. 투명한 구를 들고 소금 더미 위에 앉아있는 토착민 여성은 그 뒤로 펼쳐진 소금사막의 풍경과 신비한 조합을 이루며 일종의 기념비처럼 보인다. 수면 위로 봉곳이 올라온 소금 더미들은 마치 그녀가 현실에서 감내하고 있는 고된 삶의 여건들을 의미하고, 그녀가 들고 있는 투명한 구는 이러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토착민 여성들의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징표와도 같아 보인다.
그녀의 작업 속엔 이미 사라졌거나 이제 곧 사라질 자연의 속살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으며, 그렇기에 거대한 자연의 흔적을 기록한 것과 다름없다. 10년 동안 지속해온 오지 프로젝트를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에 처음 선보이는 작가가 41점의 사진을 통해 한국 관람객들과 어떤 감성을 공유하게 될지 기대된다. 전시 오프닝과 함께 작가와의 대화Artist Talk가 마련될 예정이며, 미술관 《Camera Work》 사진집 시리즈로 작품집이 함께 출판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