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사진미술관은 2015, 2016년 두 해에 걸쳐 프랑스 협력기관과 함께 해외 유명 사진가들의 기획전시를 소개해왔다. ‘한-불 상호교류의 해’를 맞아 프랑스에서 작업하는 젊은 작가들을 국내에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고민했다. 그 결실로 프랑스에서 자란 한국인 입양아 아녜스 데르비의 개인전 《#K76_3613》을 2016년 12월 10일 개최한다.
처음으로 모국인 한국 땅을 밝고 자신의 뿌리를 찾아나선 과정을 담은 작업 《어머니OMONE》와 자신을 길러준 프랑스 아버지의 노년을 담담하게 기록한 《Retired》연작을 단일 시리즈처럼 한 전시로 구성하여 작가의 내면에 관한 이야기를 밀도 있게 소개하고자 한다.
가족은 궁극적 안전지대로 여겨진다.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며 외부로부터 보호해주기도 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5개월이 갓 지났을 무렵 프랑스에 입양된 아녜스 데르비는 생물학적 뿌리와 정서적 관계의 끊임없는 대립 사이에서 스스로를 키워나갔다. 데르비의 입양 서류의 일련 번호를 제목으로 한 이번 《#K76_3613》 사진전을 통해 가족이라는 것은 흔들림 없지만 깨지기 쉬운 사랑과 고독이 공존하는 복잡한 것임을 보여주려고 한다. 정체성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단순히 자신의 가족을 찾는 일에만 귀속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어머니OMONE》 연작은 프랑스 가족에게 입양되어 자란 아이가 자신의 모국, 한국에 돌아와 겪은 긴밀하고 은밀한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낸 다큐멘터리이다. 1970년대에 한 아이를 혹은 여러 아이를 떠나버린 어머니들의 수치심과 비탄함을 데르비만의 감성적인 컬러 사진으로 담아냈다. 작가 자신의 깊은 내면적 탐구이며, 아녜스 데르비라는 이름을 갖기 이전 반대편 세상에 버려진 존재 송동희라는 아이의 뿌리를 찾아 나선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낳아주신 부모님을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작가가 주목하고 강조한 것은 버려진 아이들의 입장이 아닌 아이를 떠나 보낼 수 밖에 없었던 엄마들의 이야기이다. 작가가 만난 어머니들은 각각 다른 이야기를 안고 산다. 고통을 나누어줄 그 누구도 없이 홀로 견뎌온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에 담으며 어쩌면 자신의 어머니였을지 모를 그들을 통해 자신의 어머니를 이해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어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오다 데르비는 자신의 정체성은 결국 많은 부분 자신이 자라온 프랑스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길러준 아버지와의 관계는 불안하고 불편했다. 어색함 때문에 서로간의 대화가 단절된 채 세월이 흘러 갈등과, 오해를 포함한 아버지와의 기억은 심지어 좋았던 것들까지 사라지고 있었다. 《Retired》 시리즈는 길러준 프랑스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작가의 유일한 정체성의 연결고리인 아버지의 현재를 기록한다. 프랑스의 작은 도시에서 평범하게 살아온 70대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퇴직이라는 생활의 변화로 인해 생겨버린 일상의 빈 공간을 채워 나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며 또 한번 아녜스 데르비는 자신만의 따뜻하고 쓸쓸한 감성의 사진들로 이야기한다.